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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잡담

그거는 싸구려 와인이에요

가볍게, 즐겁게 푸른낙엽 2018. 7. 17. 00:11

0. 포스팅에 앞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독서모임도 하고 이전에 와인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정리했지만. 여러 가지 모임을 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끔은 독특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우연히 와인 얘기를 하다가 와인을 좀 추천해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와인을 추천하기란 애매합니다. 좀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와인을 추천할 수 없죠. 그래서 적당히 초보자가 좋아할만한 와인을 추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한 분이 '그건 싸구려 와인이에요'라고 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더이상 말을 못했습니다.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 순간 저의 욱하는 나쁜 버릇이 나올까봐 걱정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말 안 하고 그려려니 넘긴 게 다행인 것 같지만, 생각만은 멈추질 않습니다. 


싸구려 와인. 고급 와인과 싸구려 와인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일까 생각이 들고 동시에 그런 기준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미있는 없든 한 번쯤은 고찰해볼만한 가치가 있으니깐요. 



1. 싸구려 와인


미셸 롤랑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와인의 개성같은 소리를 하니깐 시장에 싸구려 와인이 넘쳐나는 겁니다. 미셸 롤랑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로버트 파커가 전성기를 맞이하던 시기였고 그 때 시장에서 고평가받는 와인의 종류가 한정되어있었죠.


숙성된 향이 다양하게 피어나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탄닌과 알코올 도수가 높은 그런 와인들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높은 점수는 곧 높은 가격으로 이어지니 와이너리들이 모두 이런 맛을 내려고 노력했죠. 그 결과 와인의 다양성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모든 와인이 한결같았죠. 


반면 지금은 달라졌죠, 미셸 롤랑과 로버트 파커가 전성기에서 피크를 찍고 내려와 시장에서 더이상 이전과 같은 와인이 고평가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와인을 두고 이전보다 밍밍하다고 평가하는 경우도 몇몇 있죠. 맥시마이즈했던 풍조가 미니멀리즘으로 옮겨간 셈입니다. 


이런 변화를 두고 옳고 그르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그런 시기가 있었다면 지금의 시기도 있는 것이니깐. 하지만 그것이 와인의 개성을 소멸시켰다는 측면에서는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개성이 없는 와인은 고가 와인이더라도 저급 와인입니다. 무엇이든 오리지널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2. 오리지널리티


싸구려 와인은 존재합니다. 자신의 와이너리의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다른 잘나가는 와이너리들을 따라하는 와인이야말로 싸구려 와인이죠. 자신의 와인으로 자신의 신념을 보이지 못하고 시장의 평가에 연연해서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가는 와인이 저급 와인입니다. 


와인은 1-2개월만에 만들어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포도 농사부터 시작해서 수확하고 오크통에 숙성을 시키고 다시 병입되어서 향과 맛의 피크를 찍는 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종이 작품입니다. 그렇게 오랜 노고가 들이는 작품에 자신의 얼굴을, 가치관을 비춰내지 못한다는 것은 고급 와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가격이 싸도 오리지널리티를 보인다면 고급 와인입니다. 그리고 제가 위에서 했던 말을 모두논외로 하고, 자신의 입맛에 도저히 이것은 아니다 싶은 것도 그 사람의 세계 안에서는 고급 와인이라고 보기 어렵겠죠. 


와인은 주관의 세계에 속한 음료입니다. 보편적인 향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나만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의 영역이 공존하는 것이 와인입니다. 전문가가 아무리 100점, 120점 줘도 내가 아니면 아닌 것이 와인입니다. 그것이 허용되는 세계입니다. 30만원 짜리 와인도 내가 도저히 못먹겠다싶으면 그것의 가치는 0원인 것이죠. 



3. 다시 싸구려 와인


싸구려 와인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건 내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타인이 이렇다 저렇다 결정할 영역이 아닙니다. 제가 얘기했던 와인의 개성이 당신에게는 별 볼일 없는 기준일 수 있죠, 그렇다면 자신의 기준을 따르면 됩니다.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와인 시음의 끝이니깐요. 


와인의 절반은 와이너리가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그것을 마시는 지금의 내가 만드는 겁니다. 내가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면 이 와인은 병 속에서 미완성인 상태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니 나도 그 와인을 마셨다면 그 와인을 양조하는데 같이 참여한 겁니다. 


마셔도 내가 마시고 판단을 해도 내가 합니다. 이 와인이 싸구려인지 고급인지는 내 경험, 그 때의 상황, 와인에서 느껴지는 언어로 표현할 수없는 인지 이상의 그 무언가가 같이 조화를 이뤄낼 때 나옵니다. 이런 것을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떤 각도에서 봐도 성급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내 판단으로 할 수 있는 일, 나이들면서 점점 적어집니다. 그런데 와인이라는 내 주관의 영역의 일도 남의 판단에 맡기지 마세요. 내가 마실 와인의 퀄리티는 나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설령 싸구려 와인이더라도 그것을 싸구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걸, 저 스스로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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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와인 학원을 다니며 느끼는 것들 http://winestory.tistory.com/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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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와인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 http://winestory.tistory.com/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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